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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팔로워십: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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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저스틴 댓글 0건 조회 273회 작성일 20-11-0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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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워십: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리더십 

이유정 소장 | 예배사역연구소

 

이제 탑 리더의 지도력에만 몰두하는 리더십학은 끝났다. 리더십의 대가인 바버라 켈러먼은 리더십의 종말이란 도발적인 책에서 팔로워십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리더십이라 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로 상하좌우가 자유롭게 연결된 세상에서 수직적 권위와 탑 리더만의 자질론은 반쪽짜리 리더십에 불과한 게다. 전 세계 리더십 학계에서 혁명적인 이론을 던진 것이다. 

21세기 4차산업혁명 시대는 팔로워들이 지닌 잠재적인 능력을 간파하고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한 때다. 그 누구보다 팔로워들에게 눈을 떠야할 곳이 교회다. 목회자, 예배인도자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 리더십이 팔로워들에게 분산되어야 한다. 나아가 예배의 문을 활짝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팔로워십은 예배인도자가 따라야 할 가장 지고한 목표다.


1. 리더십이란?  

오늘날 리더십은 거대한 산업을 이루었다. 왜 리더십 분야가 이렇게 활성화를 이루고 대학마다 리더십 센터가 세워지고, 학문의 분야로써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가? 그것은 오늘날 이 사회에는 수많은 리더가 존재한다. 가정, 교회, 학교, 회사, 국가, 군대 등 어느 곳이나 리더가 있다. 아무리 작은 단위의 그룹이라 해도, 한 사람의 리더가 그 공동체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한다. 한 사람의 리더가 조직의 생사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어떤 조직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리더십에 대한 기본 상식을 알아야 한다. 5백 년 전,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으로부터 최근 바버라 켈러먼의 리더십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리더십 유형의 변천에 대한 최소한의 흐름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 리더십의 정의 

1999년 12월 31일, ‘타임(TIME)’지는 20세기를 마감하면서 ‘금세기의 인물’을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으로 선정했다. 그 이유는 그가 인간의 사고방식과 틀을 바꿔 놓았고, 그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리더라고 강조했다. 

기독교 리더십의 고전 ‘영적 지도력’을 쓴 오스왈드 샌더스는 ‘리더십이란 영향력’이라했다. 샌더스 뿐만 아니라 많은 리더십 학자들이 그 표현이나 용어는 달라도 조직이나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의 차원으로 리더십을 정의한다. 그런 면에서 금세기의 인물인 아인슈타인은 조금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 ‘금세기의 리더’라고 볼 수 있다.

S. P. Robins은 리더십이란 리더가 일정한 상황에서 다른 구성원들로 하여금 조직이나 집단의 공통목표를 달성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과정이라 정의했다. M. M. Chemers는 ”공동의 일을 달성하려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지와 도움을 얻는 사회상 영향 과정”이라 했다.(Meta-Cognitive, Social, and Emotional Intelligence of Transformational Leadership: Efficacy and Effectiveness)


  나. 리더십의 자질

워렌 베니스는 6년 전 타계한 리더십에 관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이다. 20여권의 저서, 서던캘리포니아대(USC)교수로 리더십연구소를 운영했다. 스타벅스 CEO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에서 자신이 경험한 워렌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결정해야 할 때 밤늦은 시간이든 아침 시간이든 언제나 워렌에게 전화해서 답을 얻곤 했다.”

워렌은 지도자에게 다음과 같은 자질이 필요하다고 했다. 

첫째, 선견력(foresight): 변화하는 미래 환경을 어떻게 전망하고 적용시켜 갈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  둘째, 뒤돌아보기(hindsight): 그 전망이 조직의 전통과 문화를 거슬리지 않도록 뒤에서 다독일 줄 아는 지혜. 셋째, 세계관(world-view): 출현 가능한 새로운 발명이나 경향으로 말미암는 사회 문화적 충격을 해석할 수 있는 시야. 넷째, 깊은 인식 능력(depth perception): 큰 그림을 디테일과 전체적 안목으로 적절하게 볼 수 있는 시야와 식견. 다섯째, 주변파악 능력(peripheral vision):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때 경쟁자들과 다른 당사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능력. 여섯째, 재수립 능력(revision): 환경이 변함에 따라 이전에 종합되어 수립된 내용을 지속으로 재검토하고 재수립하는 능력 등이다. 

이 밖에도 지도자는 전망을 제시할 적절한 시기 판단, 전망의 단순성과 복잡성을 이해, 과거에서 반복되는 성질의 개념과 범위를 설정, 낙관과 비관의 조율, 현실성과 신뢰성, 때로는 특정 상황이 발생했을 때 조직에 드러내지 않은 상태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리더와 리더십》 (2006)에서 재인용)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이자 미국에서만 1300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저자 존 맥스웰은 “사람들이 찾는 지도자는 꼭 필요한 때에 적절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비난은 자기가, 칭찬은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먼저 바로 인도한다. 엇비슷한 해답이 아닌 최상의 해답을 찾아낸다. 바른길을 알고 가며, 그 길을 열어 보여 준다. 인격을 자신의 지위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여론의 물결을 따르기보다 바른 여론을 형성한다.”《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우라》(1999)

리더십의 자질은 선천적일수도 있지만, 당연히 훈련에 의해서 개발되는 후천성도 있다.


2. 양들의 반란 : 팔로워십

“There is no leader without at least one follower” 바버라 켈러먼

리더십의 대가이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인 바버라 켈러먼이 리더십의 종말을 선언하는 책을 썼다.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리더십, 팔로워십: 리더십의 종말》 (이진원 역, 씨앤아이북스, 2012). 그는 이 책에서 “리더십은 끝났다! 이제는 팔로어십이다. 똑똑한 팔로어가 세상을 바꾼다”는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의 최고 인기 ‘리더십 강좌’ 교수인 바버라 켈러가 이제 ‘리더가 되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고, 제대로 된 리더가 되려는 이들에게 `팔로워십`을 설파하는 전문가로 변신했다. 그녀는 `21세기형 리더십`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시대는 변했고 변화의 속도는 빨라졌으며, 이에 따라 리더십 산업과 학문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 팔로워십의 정의 

팔로워십 또는 추종자 정신 혹은 추종력은 어떤 개인이 자신이 속한 조직, 팀, 무리에서 맡은 역할을 뜻한다. 다른 뜻으로 한 개인이 지도자를 능동적으로 따르는 능력을 말하기도 하며 보통 리더십에 대응하는 사회적 상호작용과정으로 볼 수 있다. - 위키백과


  나. 팔로워십의 가치

리더십과 경영학의 리더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팔로워가 리더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매주 중요한 존재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지금까지 팔로워의 중요성이 과소평가 되어왔고, 이에 대한 연구도 미흡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대중의 힘이 커졌다. 이제 리더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서는 안 되고, 팔로워들에게 분산되어야 한다!

‘리더십의 종말’이란 표현은 이제까지의 리더십이 무의미해졌다는 의미일까? 궁금해서 리서치 해보았다. 매일경제 MBA팀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그녀의 의도를 발견했다. 

“리더가 없어지거나 리더십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리더십의 종말은 리더의 소멸이 아니라 리더십만으로 리더가 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리더십이 팔로워십을 끌어안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시대가 변하고 있다. 둘째, 리더십학이 리더가 되길 가르치기보다는 팔로워십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결국 21세기에 좋은 리더가 되려면 팔로워십을 이해하는 리더로 스스로를 `트랜스포밍`해야 한다.


  다. 팔로워십의 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팔로워십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는가에 대한 답으로 팔로어십은 리더십을 압도할 만큼 강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 이유는 3가지다. 

첫째, 정보의 공유다. 기존에는 리더들만 가지고 있던 정보가 모든 사람들에게로 확대됐다. 리더와 팔로워 간의 정보 격차가 없어지는 현상을 뜻하는 `정보의 대칭성`은 팔로워십을 강화시킬 것이다. 

둘째,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커뮤니케이션의 발전은 팔로워들을 더 강한 존재로 만들 것이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의 몰락은 페이스북 혁명에서 비롯됐다. 최근 한국의 촛불시위로 정권이 바뀐 것도 SNS에 익숙한 국민의 힘이 컸다. 

셋째, 행동주의(Activism)의 보편화다.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스스로 그 행동에 동참하게 된다. 인터넷과 같은 수단은 이런 행동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다. 앞으로 리더들은 더 큰 위협과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팔로워를 이해하지 못하고 팔로워십을 인정하지 않는 리더는 더 이상 세상을 리드(Lead)할 수 없다.


  라. 팔로워십의 재발견

켈러먼 교수의 리더십 선언은 사실 과거의 리더십학에도 어느 정도는 그 개념이 숨 쉬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온라인상에 상식처럼 쉽게 찾을 수 있는 보스와 리더의 차이를 보자.

보스는 명령하고 평가하기를 좋아한다. 그는 조직을 움직이는 모티베이션으로 ‘두려움’을 활용한다. 또한 자신은 큰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고, 말만 앞설 뿐 직접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팀원들에게 대우 받기를 원한다. 미팅을 하거나 행사에 참여 시, 동석자의‘급’에 대해 민감하다. 최종의사 결정권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인식시키고자 노력한다.

그에 반해서 리더는 자신이 직접 일을 추진하고, 일이 잘 안되었을 때의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열정을 불어넣는다. 자신의 대우에 신경 쓰기보다는, 팀원들의 마음이 불편한 것이 없는지 살핀다. 팀원들의 아웃풋에 대해, 잘못된 로직을 지적하기보다는 일이 되게끔 다듬어준다. 

보이는가? 보스가 아닌 리더의 이미지에는 이미 팔로워십의 가치가 숨 쉬고 있다. 즉 팔로워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을 인정하는 자질을 다루고 있다. 

박정훈의 “나쁜 리더와 좋은 리더”(브런치)에도 비슷한 내용이 보인다.https://brunch.co.kr/@columnist/13  좋은 리더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단지 팔로워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나쁜 리더는 열심히 일하고 그것을 팔로워에게까지 강요하고 괴롭힌다. 좋은 리더는 시범을 보여주고 정확하게 업무를 지시한다. 팔로워들은 리더로부터 자율성을 보장받아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다. 하지만 나쁜 리더는 그 일을 같이 한다. 그렇게 무언의 압박을 통해 팔로워들의 자율성을 빼앗는다. 

좋은 리더는 팔로워들의 삶의 질을 생각하고 발전하도록 길을 열어주고 함께 고민한다. 나쁜 리더는 자신의 출세와 목적을 위해 팔로워를 이용한다. 좋은 리더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소통을 한다. SNS, 티타임,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라도 말이다. 나쁜 리더는 소통을 빙자한 회의를 한다. 자신의 생각을 팔로워들에게 강요하고 인정받고자 한다. 

좋은 리더는 회식이 아닌 밥자리를 만든다. 사적인 대화를 하며 유대감을 형성한다. 나쁜 리더는 팔로워의 의사와 관계없이 회식하자고 일방적으로 지시, 강합, 술 권하고, 2차 3차 부르짖는다. 좋은 리더는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나쁜 리더는 자신이 나쁜지 모른다. 

이를 도표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좋은 리더

나쁜 리더

인 정

강 요 

위 임

압 박 

배 려

이 용 

소 통

주 입

유 대 감 

일 방 적

겸 손

거 만


이렇게 보편화된 리더십의 내용도 팔로워의 가치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기본으로 내재되어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기존의 리더십은 포커스가 지도자 중심의 자질론이다. 즉, 지도자가 어떤 자질과 소통기술로 팔로워들을 대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하지만 팔로워십은 리더 중심에서 팔로워 중심으로 자리를 이동한 것이다. 리더는 21세기 인터넷과 공유 정보에 익숙한 팔로워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한 이해하고 이끌어내어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은 리더십학의 혁명을 통해 팔로워 가치의 재발견이 일어나고 있는데, 교회 안에는 여전히 목회자와 리더 중심의 낙후된 리더십에서 제자리 걸음 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독교의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팔로워십(followership)이다. 


3. 영적 리더십과 팔로워십

  가. 영적 리더십의 정의

영적 리더십은 “사람들을 움직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영적 리더는 사람들을 움직여 현재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가게 한다. 이를 위해 영적 리더는 성령께 의존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께 투명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일한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산다.


  나. 왜 리더십학 만으로는 안 되는가?

첫째, 세속적 CEO형 리더십이 더 부각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교회 리더십을 그렇게 강조해온 서구교회와 한국교회의 모습 속에서 실재로 예수님의 닮은 희생과 섬김의 리더십보다는 세속적 CEO형 리더십이 더 부각되었다. 오늘날 영적 지도자들의 모습은 주님을 따르는 모습보다 자기 방식과 스타일, 리더십을 따르라는 탁월한 CEO적 리더십이 훨씬 더 부각되고 있다. 

예수님께 순종하고 성령께 지배받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목회자보다, 교회를 키우고 사람들을 조직화하고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여 성과를 낼 수 있고,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목사가 능력 있는 리더로 각광을 받는 시대다. 세상의 리더십학도 소통진자의 추가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 쪽으로 심히 기울어져 있다. 

둘째, 목회자 한 사람의 역량에 더 주목한다.

교회나 예배 현장에서 교회와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보다 목회자 한 사람의 역량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한 사람의 뛰어난 워십리더, 탁월한 설교가에 의해 예배의 분위기가 좌우된다. 이것은 성경적인 교회와 예배의 모습이 아니다.

셋째, 왕 같은 제사장인 평신도의 잠재성을 깨워야 한다. 

지난 2-30년 동안, 잠자는 평신도를 깨우는 일은 서구교회나 한국교회 모두 중요한 화두였다. 그런데 특히 한국교회는 여전히 목회자의 권위에 비해 평신도의 역량이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짙다. 팔로워십을 목회 현장에 과감하게 대입, 적용할 때 잠자는 사자를 깨우고, 성숙한 팔로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더 역동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다. 영적 지도력의 특징

오늘날 교회 안에 영적지도력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왜곡이 존재한다. 진정한 영적리더십은 먼저 팔로워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따를 유일한 대상은 우리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영적 지도력을 주신다. 

“하나님은 집단이 아닌 개인을 찾고 계신다. 영적 지도권이란 성령의 사역이며 하나님 한 분만이 수여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격을 갖춘 사람을 불꽃같은 눈으로 찾고 계시며 성령으로 그에게 기름 부으시고 자신의 특별한 사역자로 구별하여 세우고자 하신다” - 오스왈드 샌더스 <영적 지도력> 중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성령께 의지하지 않고는 결단코 리더로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이다. 오스왈드 샌더스는 이러한 영적 지도자의 특징이 "자신의 인격 만으로 다른 이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비췸을 받고 성령께 사로잡힌, 성령의 능력을 받은 인격으로 더 큰 영향을 주게 된다”고 덧붙였다. 


라. 팔로워십을 개발해야   

첫째,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의 지배 받는 팔로워십이 개발되야 한다.

이것은 신앙이 성숙한 자만의 특성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의 기본이다. 성령께 민감하게 반응하고 지배받는 팔로워가 되어야 한다. 내 안에 살아계신 성령이 아니고는 한 순간도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력에 의해 온전한 영적 삶을 영유할 수 없다. 특히 영적지도자가 추구하고 구비해야할 지도력은 세속적인 리더십이 아닌, 팔로워십이다.

둘째, 말씀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팔로워십이 개발되야 한다. 

기독교 팔로워십이 세상의 팔로워십과 차별된 것은 영적 지도자(담임 목사, 예배인도자, 평신도 지도자)와 팔로워인 평신도 모두가 동일하게 예수님을 follow하는 것이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예수님께서 따르라고 하신 대상은 “무리와 제자들”이다. 일반 성도나 영적 지도자 모두에게 해당한다. 매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follow할 수 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매 순간 순간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나는 매일 죽노라" 고백한 사도바울처럼 매일 죽는 삶을 연습해야 한다. 내가 살면 주변이 죽는다. 하지만 내가 죽을 때 예배가 살고,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사회가 살아난다.


결론

영적 지도력의 혁명이 일어나야 할 때다. 더 이상 세속적인 가치가 교회를 망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팔로워십의 정점이다. 예배의 결과도 결국 순종 아닌가? 나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라는 명령에 순종하며 성령께 지배받는 것이야말로 예배인도자의 삶의 예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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